[습작] 담력시험 픽션류



담력시험


어느 한 여름 밤에, 일단의 고등학생들이 담력 시험을 벌이고 있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휴대전화는 각자 지참하지 않기로 했다.

이십 년 전부터 쓰이지 않는 폐교사에서 기념품을 찾아 오는 것이 담력시험의 내용이었다. 인원은 남자가 셋, 여자도 셋. 그리고 남학생과 여학생 두 명이서 한 조가 되었다.

조는 겉으로 보기에 임의대로 짜여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상대를 일방적으로 좋아하고 있는 아이들의 생각대로 조를 만든 것이었다. 말하자면 담력시험을 빙자한 미팅이었다. 그러므로 을씨년스런 폐교사의 분위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부분 들떠 있었다.

남녀 학생들은 대략 십여 분의 사이를 두고 순차적으로 폐교사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가위바위보를 한 결과 성수와 빛나라는 학생이 제일 늦은 순번이었다.

제일 빠른 조는 지영이와 진원이었는데, 이 강 진원이란 친구는 남자애답지 않게 심약하고 겁이 많은 성격으로, 평소에도 전기충격기를 호신용으로 들고 다닐 정도였다. 특히, 여자한테도 숙이고 들어가는 성품이라 그런지 주로 지영이에게 휘둘리고 사는 편이었다. 그래서 혹자(빛나)는 진원이를 보고 '드센 마누라에게 잡혀 사는 나약한 남편'이라는 평을 내리기도 하였다.

게다가 진원이는 가위바위보 결과 자기가 제일 먼저 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자 더욱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 말자, 응?"

지영이 혀를 차면서 말한다.

"넌 언제까지 그렇게 우는 소리 할 거니?"

"우는 소리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예감이 안 좋단 말이야."

진원이는 왠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평소에도 겁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말수도 적고 부들부들 떨고 있어서, 몇몇 애들은 진원이를 보고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눈치 빠른 지영이는 그런 분위기를 읽고는 진원이의 귀를 잡아 끌다시피 하며 폐교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그는 애처롭게 비명을 지르며 끌려 가고 말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깔깔 웃었고, 덕분에 약간 무거워진 분위기도 다시 살아났다.

십여 분이 지났다. 이제 다음으로 들어가는 조는 진태와 사미라는 학생으로, 학교 제일의 선남선녀라고 할 수 있었다.

"너 사미한테 이상한 짓 하면 전교생이 적이다?"

성수는 그렇게 말하며 진태를 장난스럽게 툭툭 쳤다. 그러면서도 눈을 찡긋하며 신호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잘 해봐. 이왕이면 사미한테 멋진 모습 보여줘.)

(걱정은 됐네요. 그보다는 너나 빨리 동정 탈출 하라고.)

그렇게 진태와 사미를 떠나보내고 나니, 이제는 성수와 빛나만이 남았다.

빛나는 폐교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참 잘 어울린다. 그치?"

"그래. 뭐. 킹카랑 퀸카가 만나면 저렇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

진태가 여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인 것처럼 사미 또한 학교 내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성적은 둘째 치더라도, 외모로만 따지면 두 사람만큼 잘 어울리는 한 쌍도 없을 것이다.

저 두 사람은 아마 오늘을 기점으로 급격히 가까워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성수는 약간 입맛이 썼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될 놈은 뭘 해도 되는구만...그나저나 쟤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성수는 쪼그려 앉아 별하늘을 구경하는 빛나를 보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은 곁에 앉아서 뭔가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태라면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뻐꾸기를 잘 날릴 텐데.

성수가 아쉬운 마음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 어느새 그의 곁에 온 빛나가 천진난만하게 성수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성수야. 귀신 나오면 꼭 지켜줘야 돼."

그러잖아도 빛나에게 반해 있었는지라, 기분이 좋아진 성수는 가슴을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응, 나한테 맡겨! 귀신이든 뭐든 걸리면 아주 죽되는 거야. 그냥 죽되는 거야."

둘은 나란히 서서 뒷문으로 들어갔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오래된 복도의 나무 판자를 밟을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사람이 오랫동안 없는 장소에는 귀기가 서린다던가? 그만큼 밤에 들어오는 폐교에는 어딘지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으스스한 무언가가 있다. 강건한 성수조차 그렇게 생각할 지경이니 다른 아이들은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오직 빛나만이 별로 무서운 기색도 없이 두리번 거리며 폐교사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음악실. 과학실. 헌 책상과 의자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교실을 보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난다. 그런데 왜 거주자가 없으면 건물 안은 이렇게 어지러워 지는 걸까? 진짜 귀신이 자리 잡고 살아서 그런 건가?

깔끔한 성수는 이런 폐허 속에 있는 게 그닥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만약 빛나가 같이 있지 않았더라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학교를 나가 버렸을 것이다.

담력 시험은 폐교사의 뒷문으로 들어가 4층까지 올라간 다음 다시 내려와서 앞문으로 나오는 식이었다. 물론 중간에 기념품도 찾아야겠지만, 사실 기념품 따위에 관심을 둘 애는 없었다. 그보다는 마음에 둔 상대방과 단 둘이서만 있을 수 있다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물론 그건 성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빛나와 단둘이 있고 싶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려고 했지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빛나는 성수의 손을 잡아 끌다시피 하며 탐험에만 열중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참가 인원 중에서는 제일 담력시험을 즐기는 걸지도 모르지. 그는 쓴웃음을 짓는 한편 문득 석연찮은 생각이 들었다.

(으스스한데...이런 데서 정말 '로맨틱한 분위기'가 생겨나는 걸까?)

성수는 담력시험의 주최자인 진태의 말을 떠올렸다. 진태는 오늘 낮에 성수와 몇몇 애들을 모아 놓고서 담력시험(을 가장한 데이트)을 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진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무척 기대가 되었다.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빛나와 사귀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빛나가 그렇고 그런 쪽으로는 영 둔감하다는 점이라. 그래서 어떻게 해야 좋은 분위기가 될 수 있을지 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득 귓전을 때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성수야!"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니, 빛나가 뚱한 표정을 짓고 올려다보고 있는 게 아니냐. 생각을 하느라 그만 빛나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무, 무슨 일이야?"

"아휴. 못 들었어? 나 화장실 갈 거라고 말 했잖아."

제일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네. 성수는 머리를 긁었다.

"응? 아...그래. 같이 가자."

"됐어. 그냥 혼자 갈래."

빛나는 살짝 삐쳤는지 몸을 홱 돌려 성큼성큼 가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빛나를 혼자 화장실에 보내는 건 말이 안 되었으므로 성수는 억지로라도 따라 붙었다.

파트너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성수는 화장실 바깥의 벽에 기대어 섰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노라니, 문득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왜 창문이 전부 막혀 있는 거지?)

폐교사라서 창문을 막아 버린 걸지도 모르지만, 잘 살펴 보면 창문을 막아 둔 나무는 모두 새것처럼 깨끗했다. 즉, 창문을 막은 건 지극히 최근의 일이라는 것이다.

헐어 버리기 전에 창문을 막아 두는 건가? 하지만 이제껏 이십 년이 가깝도록 방치해 둔 폐교사를 이제 와서 헐어 버리는 것도 조금은 이상했다. 무엇보다 이 폐교사를 이십 년 가까이 방치해 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성수는 그 이유를 풍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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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그 시각, 2층까지 내려 온 진원이는 같이 온 여학생 지영이에게 한 소리 들어 가며 기념품을 찾고 있었다. 너는 왜 이렇게 소심하고 겁이 많니, 말 좀 많이 해라, 약한 모습 보여주지 마, 등등. 마치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물론 진원도 지영이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그냥 참고만 있었는데, 하필 분위기도 무서운데다 이런 잔소리까지 들으니 기분이 나빠질 대로 나빠졌고, 마침내 오늘 이 자리에서 그것이 폭발하고 말았다.

"야. 그만 좀 못하겠어?! 네가 뭔데 계속 그러는 거야?"

지영은 평소 그랬던 것처럼 말로 톡톡 쏘던 중, 불의의 반격을 당하자 놀라서 진원을 바라보았다. 항상 조용했던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분명 지영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내가 겁이 많은 건 알아. 하지만 그렇게 우습게 볼 것도 아니라고 보는데. 안 그래?"

진원이 씨근거리며 말하자 지영은 따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구변 좋은 그녀도 워낙에 황망한지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 난 우습게 본 게 아니라, 그냥...."

"됐어. 난 네 장난감도 뭣도 아니란 말야."

그러자 지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야. 장난감이라니,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할 수 있어? 내가 널 그렇게 갖고 논 적이 언제 있었다고 그래? 난 너 생각해서 말한 것뿐이라고...."

그러나 진원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 맞받아쳤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러는데?"

"...."

이 말에 지영은 눈을 내리깔았다. 진원도 내뱉고 나서야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침을 삼키며 다시 말했다.

"미안해. 내가 말이 심했어."

지영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진원은 그런 지영을 보고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었다. 평소에는 밉살스럽기만 한 애였지만, 모처럼 다소곳한 걸 보니 새삼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기분을 혹시 들킬까봐 무서워서 얼른 말을 돌렸다. 맞아.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귀찮은 애를 좋아할 리가 없어.

"저기 있잖아. 나 화장실 좀 가면 안 될까...아니, 갔다 올게."

지영은 대답 대신 힘 없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자 진원은 왠지 마음이 아팠지만, 그것은 부끄러운 착각일 거라 생각하고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

그 무렵, 사미와 진태는 3층의 으슥한 교실에 들어와 서로 껴안고 있었다. 원래 두 사람은 이전부터 비밀스럽게 교제 중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담력시험을 빙자한 데이트를 주최한 이유도, 사실은 짝사랑 중인 지영이나 성수를 위해서 열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미가 진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애들은 잘 하고 있겠지?"

"글쎄. 지영이는 몰라도 성수는 좀 어려울지 몰라. 너도 알다시피, 빛나는 어렵게 사는 애니까."

"그렇게 따지면 지영이도 문제야. 진원이가 그 동안 지영이를 어떻게 생각해 왔을지는 뻔하잖아?...앙, 이런 데서는 엉덩이 만지지 마...여기서 그거 하면 들킬지도 모르잖...."

"뭐? 무슨 소리야?"

사미는 진태가 엉덩이를 애무하는 줄 알고 그러는 것이었지만, 눈을 떠 보니 진태는 그저 어리둥절해 하고만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입을 내밀며 말했다.

"모른 척 하지 마. 아까 전에 성수 얘기할 때부터 계속 쓰다듬고 있었잖아."

그러나 진태는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아냐. 난 가만히 있었다고...아무튼 이젠 나가자. 음침한 곳에서 껴안고 있는 것도 좀 그렇기는 하니까."

사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진태가 부끄러워서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만 생각해 버렸다. 안 그래도 우유부단한 진태니까 자기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녀는 그렇게 자기 멋대로 단정지었다.

하지만 그 이상한 일은 잠시 후에 또 일어났다. 사미가 진태를 따라 교실을 나가려는데,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턱 잡는 것이었다.

"꺅!"

소스라치게 놀라서 돌아보았지만, 교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진태는 사미가 비명을 지르자 급히 뒤돌아 보았다.

"왜 그래?"

"지...진태야. 누가 내 어깨를...."

놀란 진태가 눈을 크게 뜨고 사미의 뒤를 살폈지만, 그 역시 아무도 찾아낼 수 없었다. 한 순간 '귀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그는 허무맹랑한 생각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사, 사미야. 뭔가 착각일 거야. 그러잖아도 여기는 기분 나쁜 곳이잖아. 여러 생각 말고 빨리 나가자."

진태는 일단 여자친구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무척이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여자의 직감이 무언가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둘은 말 못할 불안감에 떨면서 얼른 1층까지 내려가기로 하였다.

***

화장실에서 돌아온 빛나가 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자, 성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기회를 보아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빛나야.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응."

"너 혹시 사귀는 사람...없지?"

성수는 물론 빛나의 이성 관계를 이미 모두 조사한 후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질문이었다.

"음...사귀는 사람은 없어. 너도 알다시피 난 바빠서 연애를 해 볼 여유가 없거든."

빛나가 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성수는 아차 싶었다. 빛나는 원체 집안이 가난해서, 학교가 허용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언제나 바쁘게 사는 애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성수는 왠지 부끄럽고 무안한 마음에 허둥지둥 사과를 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 애한테 청춘사업 따위는 사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미, 미안해."

"음? 왜 사과 해. 나는 성수가 관심을 가져 줘서 오히려 고마운 걸."

"......."

그렇게 말하니 더욱 더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귀는 사람이 있나 없나 하는 것만 기억하면서, 정작 중요한 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니. 박성수! 부끄러운 줄 알아라.)

비록 교제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돌연 아래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렸다. 워낙 아래에서 지른 것인지 작은 메아리로 들리기는 했지만, 비명임은 틀림이 없었다.

"성수야. 방금 전에...진원이 목소리 아니니?"

빛나는 이제까지와 달리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성수도 사실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지만, 우선은 빛나를 달래려고 일부러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그렇긴 한데, 아마도 일부러 낸 걸거야. 말만 담력시험이라 그렇지 솔직히 그냥 학교만 돌아다니는 건데, 전혀 안 무섭잖아? 그러니까 음향효과를 낸 걸 거야."

"음...역시 그렇겠지?"

빛나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것인지, 자신 없는 투로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사실 정말로 무슨 일이 있다고는 믿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비명 소리에 대한 공포는 일단락이 되었다.

두 학생이 십여 분 동안 4층을 다 돌고 다시 3층으로 내려갈 무렵이었다.

그간 조용히 걸어가고 있던 빛나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성수야. 있잖아. 여기 학교에 있는 창문 말이야...왜 다 막혀 있는 걸까?"

성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아까 성수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던가.

"글쎄. 나도 아까 생각해 보기는 했는데, 잘은 모르겠어. 어쩌면 여기를 헐어버리려고 미리 막아 둔 게 아닐까?"

그런 것 치고는 창문을 막은 나무가 너무 새 것처럼 보이지. 마치 얼마 전에 누가 일부러 막아버린 것처럼 말이야. 성수는 그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고 입 안에서만 우물거렸다.

빛나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있잖아. 이 얘기 들어 봤어?"

"무슨 이야기?"

"...이 폐교가 헐리지 않는 이유. 아는 언니가 그랬는데, 원래 여기는 십구 년 전에 이미 헐렸어야 했대. 그런데 아직까지도 헐리지 않고 있다는 거야."

성수는 침을 삼키면서 그 말을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받으려고 했다.

"그건 사유지가 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원래 나라의 땅이어도, 돈을 주고 산 땅은 나라에서도 손을 못 댄다잖아."

"하지만 사유지에 폐교가 있으면 누구라도 헐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아냐. 이 학교를 헐어버리는 돈이 더 들어서 그럴 지도 몰라."

성수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점점 커지는 어떤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학교를 헐어 버리려는 시도는 여럿 있었대. 그런데도 헐지를 못하고 이십 년이 넘게 이 자리에 있는 거라고 했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빛나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가 왜 안 헐리는 줄 알아? 그건 말이야. 사실은 여기에 있는...."

거기까지 말했을 때, 성수가 돌아서서 빛나의 어깨를 붙잡고 소리쳤다.

"야. 그만 해! 도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어...?"

빛나는 말을 멈추고 나서 불현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성수를 올려다 보았다.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왜 어깨를 붙들고 그래? 나한테 무슨 일 있었어?"

마치 정신이 잠깐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 같았다. 성수는 등골이 오싹해져 옴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빛나야. 우리 담력시험은 그만 하고 애들 불러서 빨리 나가자.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

빛나도 불안한 마음이 들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둘은 거의 뛰어가다시피 하여 1층에 내려왔다. 그러나 열려 있어야 할 정문은 안쪽에서 굳게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성수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처음에 들어 온 뒷문으로 달려가 보았다.

"어때?"

뒤늦게 따라온 빛나는, 뒷문 앞에 오도커니 서 있는 성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성수의 대답은 빛나가 생각한 그대로였다.

"잠겼어. 누군가 우리들을 가둔 거야. 그리고 그 가둔 녀석은 우리와 같이 이 학교 안에 있을지도 몰라!"

빛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누가 그런 걸까!

성수는 우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빛나는 달래기 위해, 빛나의 어깨를 잡고 최대한 조용하게 말했다.

"빛나야. 넌 우선 1층에 있는 저 체육실 안으로 들어가 있어. 거기에는 안에서 잠그는 락커가 있으니까, 그 락커 안에 숨어 있으면 당분간 안전할 거야."

"넌 어떻게 하려고?"

"알잖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범인을 잡아서 문 열쇠를 내놓게 할 거야. 나 믿지? 내가 보호해 줄 테니까 넌 그냥 숨어 있어. 알았지."

그렇게 말하는 성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빛나는 왠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위...위험할지도 몰라."

빛나는 성수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성수는 키가 작은 빛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다음 어디론가 달려 가기 시작했다.

빛나는 불안한 눈초리를 하면서도 성수가 시킨 대로 체육실 안에 들어갔다.

***

성수는 1층을 이 잡듯이 샅샅이 찾아 보았으나 어리친 개새끼 한 마리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마침 중앙 현관을 내려오던 진원과 마주쳤다.

진원은 성수를 보자마자 크게 반기며 호들갑을 떨었다.

"성수야! 큰일 났어. 지영이가, 지영이가...."

"일단 침착해. 무슨 일이 난 거야?"

"으, 응. 지영이가...귀신이 들렸어."

"뭐?"

성수가 표정을 찡그렸다. 이 겁쟁이 놈아, 이런 상황에서도 장난을 치는 거냐.

그러나 진원은 어디까지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진짜야. 장난치는 거 아니야. 너 내가 아까 비명 지른 거 못 들었어?"

"들었지."

진원이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말했다.

"그래. 난 그 때...귀신을 봤다고. 너도 내가 영감이 좋은 건 알잖아. 어쨌든 내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있으려니까 귀신이 얼른 가 버리더라고. 그래서 뒤쫓기는 했는데...하필이면 지영이 몸에 들어 갔단 말이야."

성수는 눈을 흘겼다. 아무래도 믿기 어려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야. 지금 그걸 나 보고 믿으라고?"

"정말이야.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단 말이야!"

진원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자기 주장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수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으므로, 이상한 점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믿음이 가는 말을 해야 큰 일인지 아닌지 믿어 줄 거 아냐."

그러나 진원이는 정말로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휴...그래. 네 말 대로 귀신이 있다 치자. 그러면 넌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야? 지영이는 어쩌고."

성수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게..사실은, 내가 지영이를 기절시켰거든. 난 원래 전기 충격기를 가지고 다니는 거 알잖아. 그래서 그걸로...어쩔 수가 없었어. 일단 나중에 사과하려고 해."

저 겁쟁이가 어떻게 지영이를 전기 충격기로 지질 생각을 했지? 성수는 그렇게 의심을 하여 진원을 앞세우고 2층 양호실에 들어가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지영이가 기절한 채로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네가 일부러 저런 게 아니고?"

진원은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아니라니까! 정말 날 못 믿는 거야? 그리고 내가 왜 지영이한테 그런 짓까지 하겠어? 저렇게 맨날 사사건건 갈구는 애가 뭐 좋다고."

듣고 보니 성수 입장에서는 정말 그럴듯한 말이었다. 그는 그동안 진원이가 지영에게 눌려 사는 걸 보아 온 것이다. 게다가 단 둘이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애들의 눈도 있는데 뭐하러 지영을 해코지하려 들겠는가.

그래 성수가 어떻게 할 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이번에는 진원이 물었다.

"그런데 넌 왜 여기 있어? 빛나는 어디에 두고."

"그거? 그건...."

성수는 자세한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일단 1층의 출구가 모조리 막혔다는 사실만은 알려 주었다. 그러나 빛나가 어디에 숨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여하간에 진원도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눈을 크게 떴다. 그 역시 범인이 아직 건물 안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한 것 같아 보였다.

"뭐 어쨌든 상관없겠지. 네가 진짜로 나쁜 마음을 먹고 기절을 시킨 건지 아닌지는 지영이가 깨어나는 대로 물어보면 될 일이니까."

성수는 으름장을 놓듯이 말하고는, 진원에게 이 곳을 지키게 한 다음, 사미와 진태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이후 2층과 3층, 심지어 4층까지 샅샅이 둘러 보아도 나머지 두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들이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성수는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해매며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메아리 뿐이었다.

기분 나쁘게 삐걱대는 복도만 십 분이 넘도록 뛰어다니고 있으니 어지간한 성수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중에 불현듯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맞다! 열쇠는 지영이에게도 있었지!)

아무리 대충 하는 담력시험이라도 어느 정도 준비는 하게 돼 있었다. 그리고 그 준비를 하는 건 주최자인 진태와 지영이다.

이 일대의 토지는 모두 지영이네 집안의 것이었고, 이 학교의 소유주도 일단은 지영의 부친 것으로 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오늘의 담력시험을 위해 지영이가 미리 열쇠를 챙겨 왔던 것도 모두 기억이 났다. 또한 여벌의 열쇠가 담력시험을 제안한 진태에게 있다는 것도 생각났다.

성수는 분위기도 무서운데다 이 사건 저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그런 것조차 제대로 기억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우선 지영의 열쇠를 가지고 여기를 나선 다음 사람들을 불러 오기로 결정하였다.

성수는 다시 2층 양호실로 돌아갔다.

여전히 거기 있는 진원이가 성수를 보고 물었다.

"진태는 찾았어?"

"아니...어디갔는지 모르겠어. 어쩌면 엇갈린 걸지도 몰라. 그래도 일단은 지영이 열쇠를 가지고 여기에서 나가야 돼.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오자."

진원도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야. 그걸 왜 지금 말해. 아까 전에 말했으면 지영이를 업고서라도 나갔을 텐데."

"진태를 찾아보지도 않고 나갈 순 없잖아. 게다가 아까는 네가 무슨 귀신이 어쩌고 해서 정신을 못 차렸단 말야."

성수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지영의 열쇠를 찾아냈다. 그러자 진원이 문득 말했다.

"잠깐, 그거 가지고 너 혼자만 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뭐? 야. 너 날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

"물론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이쪽은 불안 요소가 너무 많단 말야."

그러고 보면 진원은 지영을 업고서라도 데리고 나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성수가 잠시 생각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내가 먼저 빛나를 데리고 올 테니까, 넌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열쇠는 안 가져가면 되겠지."

그 말에는 진원도 수긍했다.

성수는 다시 양호실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1층의 체육실로 갔다. 그는 락커룸의 문을 열고 안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섰다.

"빛나야. 나 성수인데. 아무 일 없지? 이젠 나와도 돼. 열쇠를 찾았어."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빛나의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비록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웃으면서 대답을 하려던 성수의 머리통에 쇠방망이가 날아왔다.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 맞은 성수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어, 어째서...)

바닥에 떨어진 랜턴이, 빛나가 쇠방망이를 들고서 웃고 있는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비추고 있었다.

그의 의식은 곧바로 멀어져 갔다.

***

그러면 진태와 사미는 어떻게 되었는가.

사미는 귀신이 자기를 만졌다고 생각하자마자 진태를 이끌고 얼른 도망쳐 내려왔다. 그래서 헐레벌떡 1층에 도달할 즈음에는 진원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진태는 멈추어 서서 사미를 보고 말했다.

"이거 진원이 목소리 아니니?"

"어...맞아."

사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까 경험한 귀신 소동이 떠올라서 그랬을 것이다.

"일단 소리가 난 쪽이 분명 2층...."

하고 진태가 몸을 돌리려는데, 사미가 그런 진태의 손을 잡아 채는 게 아닌가.

"왜 그래. 사미야. 빨리 진원이한테 가야지...."

사미는 진태의 말을 차단해 버렸다.

"진태야...나, 무서워. 남자애가 비명을 지를 정도면 엄청 무서운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잖아? 그런데 날 두고 혼자서 가겠단 거니?"

그러면서 눈물 섞인 목소리로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이에 여자친구를 끔찍이 아끼는 진태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친구를 그냥 버려두는 것도 역시 말이 안 되었다.

"사미야. 그럼 같이 가면 돼잖아. 내가 왜 널 버리겠어."

그러나 사미는 요지부동이었다.

"안 돼. 같이 갔다가 귀신한테 너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응?"

"귀신 이야기는 하지 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진태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사미는 정말 울기라도 할 것처럼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 말 못 믿는 거야? 나, 아까 정말로 귀신 봤단 말이야. 귀신이 내 등허리랑 엉덩이도 만지고 또...하여튼 빨리 도망치자. 여기는 진짜 너무 무섭단 말야."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친구를 버리고 그냥 간다는 게 말이 되니...."

"도망치자는 게 아니야. 나가서 사람을 불러 오자는 거야. 응."

그런 식으로 계속 충동질을 하니 마음 약한 진태는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미는 진태가 우유부단하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가 한 번 흔들리는 것을 보고 거듭 애원을 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가서 사람들을 불러 오자."

사미가 경험하기로 진태는 자기의 말을 거역할 위인이 못 됐다. 그리고 이번에도 결국 사미의 말에 따라 여기를 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는 겁 많은 애인의 말을 이기지 못해 친구들을 버리고 간 것이다.

둘은 제일 먼저 폐교를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계속 중얼거렸다.

"우, 우리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만 불러 오는 거야. 그렇지?"

"맞아. 그러니까 어서 가자. 나 빨리 샤워 하고 싶어 죽겠어."

이렇게 두 학생이 폐교를 빠져나갔을 때, 진원은 지영에게서 얻은 열쇠를 가지고 폐교 1층의 모든 출구를 막아 버리고 있었다.

***

진원이 귀신을 보고 비명을 지른 건 사실이었다. 그는 영감이 뛰어났기에 모습을 감춘 귀신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겁이 너무 많았던 관계로, 귀신을 보자마자 바로 기절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귀신들도 원래 겁 많아 보이는 진원을 이용하기로 한 터인데, 그가 이렇게 쉽게 정신을 잃자 뛸듯이 기뻐했다. 그리하여 두 귀신 중 한 명이 진원의 몸에 먼저 들어갔다. 그들 귀신은 영기가 세서 그런지 정신을 잃은 인간의 몸에 들어가 자기 몸처럼 조종을 할 수가 있었다.

때마침 진원의 비명소리를 듣고 걱정이 된 지영이가 화장실 안으로 달려 들어오자, 마침 기다리고 있었던 나머지 귀신이 지영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불과 십대 여학생인 지영이 귀신을 보고도 온전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그래도 진원보다는 정신이 강한 지, 이마에 손을 짚고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았다.

그러나 진원의 몸 속에 귀신이 들어 있는 것까지는 그녀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진원의 몸 속에 들어간 귀신이 진원인 체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지영아. 괜찮아?"

"지, 진원아...."

아무리 선머슴같은 여자애라도 겁을 집어먹은 이상에는 누구든지 가서 안기는 법이었다. 지영은 의심하는 법도 없이 진원에게 달려가 안겼다.

지영은 눈물 섞인 얼굴로 진원을 올려다보며 말하였다.

"방금 전 그건 도대체...설마..진짜로 귀신이야?"

진원은 차갑게 웃었다.

"그렇단다."

엣? 이상함을 느낀 지영이 눈을 들어 진원을 보려는 찰나, 진원은 주머니에서 전기 충격기를 꺼내서 지영의 목덜미에 꽉 눌렀다.

"꺄아아악-!"

지영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으나, 귀신 들린 진원의 힘을 이겨낼 수가 없었고, 귀신은 그것도 모자라 무자비하게 전기 충격을 가했다.

마침내 지영은 눈을 뒤집고 기절을 해 버리고 말았다.

진원은 지영을 업고 양호실로 옮겼다. 그리고 그가 지영의 열쇠를 가져 와서 1층을 잠궈버린 건 바로 그 몇 분 후의 일이었다.

***

진원이 문을 잠근 지 대략 몇 분이 더 지나자, 성수와 빛나가 헐레벌떡 1층에 도착하고, 모든 출입구가 잠긴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성수는 우선 빛나를 보호하려고 체육실 안의 라커룸에 들어가 있도록 말했지만, 그 대화를 엿들은 자가 있을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하였다. 말할 것도 없이 아까 진원에게 빙의한 귀신의 동료였다.

그 동료 귀신은 빛나가 라커룸에 들어왔을 무렵 빙의를 시도했다.

라커룸에 쭈그려 앉아 불안에 떨고 있던 빛나는 문득 몸에 오한이 달리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욱...!"

깜짝 놀라서 소리를 치려고 했으나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손발을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식은 땀이 줄줄 흐르며 정상적인 생명 유지를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빛나에게 들어가 있는 귀신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고통이었다.

(가만 있으렴. 그렇지 않으면 너만 괴롭게 된단다)

빛나는 마음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듣고, 괴로운 와중에서도 놀랐다.

(누구...?)

(너는 내가 누군지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네가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어)

(도, 도대체 넌 누구야!)

(네 몸의 새로운 주인이란다...자, 빨리 순순히 몸을 내놔. 어서!)

빛나는 힘겹게 고개를 저으며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편 귀신도 크게 후회를 하였다. 그간 영기를 모았기 때문에, 제정신인 인간에게도 쉽게 빙의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아직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녀는 이제 앞으로는 정신을 잃은 사람에게만 들어가기로 굳게 다짐했다.

어쨌든 이십 년을 넘게 묵은 귀신을 겨우 십대 후반의 소녀가 이겨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빛나의 혼은 의식의 깊숙한 곳까지 침몰해 버렸다. 아마 귀신이 그녀의 몸을 떠나지 않는 한에는 두번 다시 자기 몸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수가 진원의 말만 듣고 혼자서 라커룸까지 도착했다.

빛나의 탈을 쓴 귀신은 빨리 정신을 차리고, 마침 근처에 있던 쇠방망이를 손에 들었다.

인간인 성수는 불빛이 없으면 어둠 속을 볼 수 없었지만 귀신이 들린 빛나는 불빛이 없어도 어둠 속을 환히 볼 수 있었다.

"빛나야. 나 성수인데. 아무 일 없지? 이젠 나와도 돼. 열쇠를 찾았어."

아무것도 모르는 성수가 말하자, 빛나는 발소리를 죽여 성수의 뒤로 돌아가면서 천진난만하게 되물었다.

"정말?"

그리고 성수의 뒤통수를 향해 쇠방망이를 힘껏 휘둘렀던 것이었다.

***

성수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음?)

눈을 떠 보니, 지영이 자기를 보면서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그 연놈들은 쫓아갈 필요 없어. 내가 이 몸을 가지고 그들 앞으로 찾아 갈 거니까. 그 녀석들은 자기가 겁쟁이라는 게 알려질까 두려워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말하지도 못할 거야."

"알겠습니다."

남자가 알겠다고 대답을 하는 것을 듣고 성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대답을 한 것이 바로 자기의 입이었기 때문이다.

놀라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해 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마치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닌 걸로 변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가 놀라고 있는 사이에도, 성수의 입은 계속해서 성수가 생각하지도 않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학생의 몸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성수의 손가락이 진원을 가리키자, 지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죽여."

(뭣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서 찬찬히 뜯어보니 지영의 기색 역시 예사롭지가 않았다. 어딘가 도도하고 차가워서, 평소의 지영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게 아닌가.

성수의 혼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성수의 육체는 지영에게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하였다.

"예. 언니."

성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오랫동안 기절해 있던 진원은 왜인지 산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

주변을 둘러 보니 성수가 쇠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빛나가 성수의 뒤통수를 때릴 때 쓴 물건이었다.

"성수야. 왜 그래? 여긴 도대체 어디야?"

진원이 무거운 머리로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성수가 천천히 다가왔다.

겁 많은 진원은 성수의 살기등등한 모습을 보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야, 야. 성수야. 왜 그래...."

그러나 여기서 떨고 있는 사람은 진원만이 아니었다. 성수야말로, 자기 몸이 멋대로 움직이면서 보여주는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이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야, 이 겁쟁아! 울보! 빨리 도망쳐! 도망치라고! 여기 있으면 넌 죽는단 말야!)

성수의 입은 성수의 바람과는 달리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건 몰라도 돼."

"?"

진원은 겁에 질려 뒷걸음치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 그를 향해 성수는 쇠방망이를 힘껏 치켜들었다.

(그만해! 그만두라고!)

"왜냐면 여기서 죽으니까."

그리고 쇠방망이가 진원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성수의 힘이 어찌나 센지, 불과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 진원의 머리가 터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광경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성수는 경악과 울분에 차서 비통하게 외쳤다.

제발 그만해-!

그러나 성수의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올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그가 자기 몸을 되찾는 건 성수의 몸을 차지한 처녀귀신이 빠져 나온 후에야만이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성수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성수의 몸은 진원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거듭 방망이를 내리쳤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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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있다가 저녁나절에 올릴게요...

좀 피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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